은이 솟구치는 산에서 중남미 사회의학으로 [주기율표 위 건강과 사회]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입춘, 경칩, 춘분이 지나도록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봄의 전령사가 도착했다. 백련사 동백도, 산동마을 산수유도, 화엄사 홍매화도 그 주인공이 아니었다.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황사와 미세먼지야말로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진정한 전령사다.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세계 1등이었다는 그날, 거리에는 다시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도 오랜만에 서랍 속에서 KF 94 마스크를 하나 꺼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열린 한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었다.포장지에는 커다랗게 ‘은나노’ ‘ 아카이브 전문가들이 파업을 벌이면? 임윤희 (도서출판 나무연필 대표, <도서관 여행하는 법> 저자) 17년 전, 캐나다 밴쿠버를 여행하다가 도서관 파업을 목격한 적이 있다. 구체적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돌아온 게 오래도록 마음에 걸렸는데, 이번에 다시 밴쿠버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서 그 시절 파업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밴쿠버 공공도서관 7층의 스페셜 컬렉션실. 이곳은 도서관에서 갈무리한 가장 귀한 자료들을 별도로 관리하며 이용자에게 서비스하는 공간이다. 여기에 ‘밴쿠버 공공도서관: CUPE 391 파업 아카이브’라는 자료가 있었다. 사서에게 자료명과 청구기호를 제출했더니, 10㎝ 정도 두께의 검정색 파일 다섯 개가 카트에 실려 왔 사라진 나라, 동독에 대하여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장벽 너머카트야 호이어 지음, 송예슬 옮김, 서해문집 펴냄“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 갇히다.”동독(독일민주공화국)은 1949년 건국되어 1990년 10월 지금의 독일 연방공화국(이전엔 서독)으로 흡수 통합되면서 사라진 나라다. 한국인에게 동독은, 슈타지(비밀경찰)로 겨우 유지되었고, 서독과의 경계에 장벽까지 세워가며 인민들을 통제하다가 하루아침에 망한 공산국가로 기억될 뿐이다. 〈장벽 너머〉는 이 나라의 일대기다. 히틀러에게 추방당한 독일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처음엔 스탈린의 감시 아래서, 나중엔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독일식 사회주의 국가 주머니 사정 늘 빠듯한 이유 [기자들의 시선] 김연희 기자 이 주의 죽음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끝을 알 수 없는 참상이 이어지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은 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에서 생후 2개월 아기가 급성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2월25일 보도했다. 아기의 이름은 마무드 파투. 파투는 숨을 헐떡이는 상태로 병원에 도착했지만 곧 숨을 거두었다. 병원 관계자는 “영아를 위한 분유가 완전히 동이 났다. 아기가 수일 동안 분유를 전혀 먹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원래도 식량난이 심각했는데 구호품까지 끊겨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영유아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구호품의 대부분이 하마스에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 경제학 퇴치 가이드현동균 지음, 진인진 펴냄“‘노동시장의 유연화’는 공멸의 길이다.”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론’은 국내 주류 경제학계의 비웃음을 받았다. 심지어 더불어민주당까지도 ‘흑역사’로 여긴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아베노믹스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하고 있는가? 서방국가의 저명 경제학자와 언론들은 ‘아베노믹스 때문에 일본 경제는 돌이킬 수 없게 망할 것’이라고 10년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 나라 경제는 의외로 멀쩡하다. 혹시 ‘가깝고도 먼’ 두 나라의 최근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 기준 우리는 쓰다 버리는 소모품이 아닙니다 [포토IN] 이명익 기자 “여기 구미공장은 LG에, 평택공장은 삼성에 납품을 합니다. 구미공장에서 화재가 난 뒤 여기서 납품해야 할 물량을 평택에서 납품하려고 저희 조합원들이 올라가서 스펙 정합(LG의 납품 기준에 맞추는 작업)도 하곤 했어요. 그렇게 일을 해왔는데, 고용승계는 안 된다고 합니다. 다른 법인이라고···.”전화 통화를 하던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박정혜 수석부지회장(38)은 ‘다른 법인’이라고 하다가 말끝을 흐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LCD 편광필름을 생산하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엔 뜻밖의 기회가 찾아왔다. 중국 공장들이 멈춰 서면서 영화광들의 시대와 청년 봉준호, ‘노란문’을 아시나요? 임지영 기자 1993년 봄, 〈노란문〉 제1호가 세상에 나왔다. 28쪽짜리 ‘영화 연구 자료집’으로, 표지 한가운데 놓인 노란색 문 이미지가 시선을 끈다. 최종태 소장의 발간사가 비장하면서도 어딘가 느슨하다. ‘한국 영화의 새물결을 일으킬 새로운 영화세대가 경계해야 할 가장 큰 내부의 적’으로 자만과 조급함을 꼽은 데 이어, ‘한 화학원소를 발견하기 위한 어느 과학자의 끊임없는 실험의 반복처럼,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기보다 자신의 내부에서부터 무르익어 넘칠 수 있기를 노력하며 인내할 생각’이라고 밝힌다.1990년대 초 만들어진 노란문 영화연구소 ‘세상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인물이 놀란 감독과 만나면? 임지영 기자 심채경 천문학자가 ‘놀란(be surprised)’과 ‘논란(controversy)’의 뜻에 대해 설명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 내놓는 작품마다 대중을 놀라게 하며, 서로 다른 의견을 논의하게 만드는 점에서 놀란 감독을 정확히 묘사한다.” 한국 관객들의 오랜 ‘언어유희’가 마침내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순간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녹화한 tvN 〈알쓸별잡〉의 한 장면이다. 그의 신작 〈오펜하이머〉도 이런 견해와 일치하는 작품이다. 여러 방면에서 관객을 놀라게 만드는 영화이고 ‘불법 촬영 규탄’ 리트윗은 어떻게 계약 종료로 이어졌나 [테크 너머] 조경숙 (테크-페미 활동가) 어떤 콘텐츠든 세계관이 중요하다고들 한다. 세계적 스타 BTS도, 슈퍼히어로가 날아다니는 마블 코믹스도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세계관은 이 세계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역사를 지니고 있는지, 이 세계가 당면한 과제는 무엇인지를 담고 있다. 그렇게 세계관이 구성되고 나면, 캐릭터에게도 비로소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목표가 생겨난다. 이러한 세계관은 게임에서 더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게이머들은 게임을 플레이하며 게임의 세계관을 차근차근 이해할 수 있고, 게임 회사에서도 미리 구축해 놓은 세계관을 통해 일관성을 지닌 신규 콘텐츠(이 네 명의 여성이 보여주는 사랑과 혁명의 이중주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영화는 쓸쓸한 바닷가에서 시작한다. 덴마크의 외딴 마을, 나이 지긋한 자매 마르티나와 필리파가 목사 아버지가 남긴 작은 교회를 이어가며 소박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프랑스 여인 바베트가 등장하고 사건이 일어난다. 〈바베트의 만찬〉(가브리엘 악셀 감독, 1987) 이야기다.영화는 49년 전, 자매가 젊고 빛나던 시절로 돌아간다. 젊은 구애자들 중 스웨덴에서 온 장교 로렌스와 파리에서 온 파핀이 특히 진지했다. 자매의 마음도 부풀었다. 딸들이 사역을 돕기 바란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았다. 자매는 순종했고 나이를 먹었다.35년이 흐른 1 독자 리뷰 시사IN 편집국 오은선 (동네책방에서 〈시사IN〉 읽기 모임 참여)매일 신규 확진자 수에 주목하면서 뉴스를 보던 때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더 이상 확진자 수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습관이 되었다며 마스크를 쓰는 게 더 편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제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더 눈에 띈다.지난 5월11일 사실상 엔데믹이 선포되었고 뉴스를 통해 이미 소식을 전해 들었음에도 〈시사IN〉 제821호에 실린 기사(한국은 어떻게 팬데믹의 끝에 다다랐나)가 눈에 띄었던 이유는 3년4개월 동안 우리 삶을 완전히 바꿔버린 팬데믹이라는 우리는 왜, 직접고용이 될 수 없나요 [시선] 신선영 기자 “내가 굶지 않으면, 우리 가족이 다 굶습니다.”4월25일 서울 마포구 서울신용보증재단 앞. 단식 농성을 시작하는 임지연 공공운수노조 희망연대본부 서울신용보증재단 고객센터지부 지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임지연 지부장을 포함해 단식 농성과 파업에 동참하는 여덟 명이 함께했다. 모두 40대와 50대 여성 노동자였다.거리 투쟁의 발단이 된 것은 재단이 추진하는 '인원 감축'과 ‘풀 아웃소싱’이었다. 서울신용보증재단은 3월31일 고객센터 직원 25명 중 8명을 감축하기로 했다. 또 용역업체 소속인 고객센터를 재단에서 완전히 분리해 운영하는 워킹맘 형틀목수의 꿈, 여성이 행복한 일터 [나는 ‘건폭’이 아닙니다②] 변진경 기자 건폭, 조폭, 깡패, 가짜 근로자, 귀족 노동자, 무법자, 가짜 약자, 민폐 집단…. 요즘 우리 사회가 어떤 부류의 국민을 부르는 말이다. 대통령과 국토교통부 장관이 조어(措語)하고 입에 올리면 다수 언론이 그대로 받아쓰는 단어다. 이 모진 말들이 향하는 대상은 건설 현장 노동자, 그중에서도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들이다.머리띠를 두르고 조끼를 입고 거리로 나서 집단행동을 벌이는 이들을 보고 사람들은 가끔 잊는다. 이들의 개별성을. 이들 각각이 누군가의 가족이고 이웃이고 친구이고, 또 시민이고 국민이라는 사실을. 건설 노동자 한 명 한 1년을 싸웠다 ‘시급 400원’ 올려달라고 [포토IN] 신선영 기자 3월8일 아침 서울 도봉구 덕성여자대학교 대강의동 건물로 학생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막대 걸레를 들고 복도 바닥을 닦던 이광수씨(60)의 손이 덩달아 빨라졌다. 과거 네 명이 맡아온 대강의동 건물 하나를 청소 노동자 두 명이 맡으면서 이씨의 업무량도 늘었다. 정년퇴직한 동료들의 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현재 이씨는 건물 입구와 강의실 6개, 지하 동아리방, 2개 층 화장실을 담당하고 있다.12년 차 청소 노동자 이광수씨에게 따라붙는 꼬리표가 있다. 60대, 여성, 생계 부양자, 저임금 노동자, 용역업체 소속, 그리고 덕성여대 청소 실직한 노동자, 왜 건강해졌을까? [삶이 묻고 경제학이 답하다]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2023년, 세계는 경제불황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불황의 특징 중 하나는 실업률의 증가죠. 불황이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을 것입니다. 실직으로 인한 고통은 상당합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삶의 중요한 상황에 대한 스트레스 정도를 조사했습니다. 배우자의 죽음이 100점으로 1위, 이혼 73점, 별거 65점이고 실직은 47점으로 8위를 차지했습니다. 그만큼 실직은 공포스러운 경험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실직하면 인생이 정말 꼬일까요? 실직의 장기적 영향은 소득, 건강, 가족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목격한 빈곤에 대한 기록 [기자의 추천 책] 이은기 기자 책은 경고로 시작한다. “나를 포함한 시민 대중도 빈곤의 연결망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던 국가 통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한 무심함을 내면화한 채 ‘쓸모없는’ 생명의 축출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공조자다.” 책은 저자가 20여 년간 연구하고, 한국과 중국의 현장에서 목격한 빈곤에 대한 기록이다. 왜 빈곤 ‘과정’일까. 저자가 중국에서 만난 두 여성 쭤메이와 쑨위펀의 궤적에 주목해 읽었다.쭤메이는 중국 선전에서 노동자 연쇄 자살로 악명 높은 아이폰 제조업체 ‘폭스콘 공장’의 여성 노동자다. 가 시사IN 제 754호 - 검찰을 사랑한 대선후보 이종태 편집국장 편집국장의 편지REVIEW IN 독자 리뷰 퀴즈 말말말 기자들의 시선/이상원 기자들의 시선/이오성 포토IN/ 운동화 신고 달린 ‘통합’의 이재명, 어퍼컷 날린 ‘정권 심판’의 윤석열COVER STORY IN검찰 공약 살펴보니 “뼛속까지 검찰주의자”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검찰 관련 공약을 발표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검찰총장에게 검찰청의 예산 편성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다. 그날 채널A에선 무슨 일이 있었나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카톡 대화 ‘윤석열 대검’의 언론 플레이ISSUE IN 2022 대선 전국의 이주노동자들이 매달 식당에 모이는 이유 이천·안산·수원/나경희 기자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당신이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난 이주노동자라고 가정해보자. 비행기로 여섯 시간, 열차로 다섯 시간을 이동해 도착한 곳은 낯선 나라, 낯선 지역이다. 문이 잠기지 않는 비닐하우스 숙소에 불쑥 들어온 사장이 계약서를 내민다. 월세는 20만원이지만 겨울에는 난방비로 달마다 60만원을 내야 한다. 서류에는 이곳이 딸기 농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사장은 마늘밭에서도, 고구마밭에서도 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하는 시간도 6시간이 아니라 9시간이 될 수도, 12시간이 될 수도 있다. 이 나라에서는 정해진 양을 수확하는 데 “이곳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유일한 쉼터입니다” 이천·안산·수원/나경희 기자 2013년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크메르 노동권협회’는 쉼터를 운영한다. 사업장에서 갑자기 쫓겨나거나 도망쳐야 해서 갈 곳을 잃은 노동자들이 다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임시로 머무는 곳이다. 쉼터에서 지내는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노동기본권에 대해 배우고 산업안전 교육을 받는다. 일터로 돌아간 노동자는 대부분 나중에 쉼터를 이용할 다음 노동자를 위해 크메르 노동권협회의 후원자가 된다. 현재 후원회원 160여 명이 선순환을 통해 자체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지난 5월부터 크메르 노동권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속파오시다 씨는 2 하얗게 생명을 불태운 성냥 공장 이야기 김형민(SBS Biz PD) 요즘은 거의 구경하기 힘든 물건이 됐지만 한때 성냥은 불을 피우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냥은 붉은 꼭지가 달린 ‘적린(赤燐)’이야. 이 적린이 개발되기 전 세상의 성냥 공장 노동자들은 ‘백린(白燐)’ 성냥을 만들었다. 그런데 이 백린 성냥은 그야말로 노동자들에게 악마 같은 존재였어. “백린 성냥은 제조 과정에서 독가스를 내뿜는 데다 피부에도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등 인체에 치명적인 위험을 지닌 것이었다(〈한겨레〉 ‘최우성의 동화경제사’).” 오늘 들려줄 이야기의 주인공은 백린에 맞선, 정확히 말하면 사 더보기